Issue 117, Jun 2016
크라임 씬을 목격하다
France
Double Je: Artisans d’Art et Artistes
2016.3.24-2016.5.16 파리, 팔레 드 도쿄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 늦은 밤, 인적 드문 한 모텔로 사람들이 비를 피해 하나둘씩 모여든다. 여배우와 운전사, 경찰과 그가 연행하던 살인범, 젊은 신혼부부 한 쌍, 라스베이거스에서 온 매춘부, 어린 남자아이 하나 딸린 세 식구 그리고 모텔주인까지 모두 열한 명인 이들은 그렇게 우연히 그곳에서 만났다. 억수로 내리는 비 때문에 사방의 길이란 길은 모두 막힌 그 날 밤, 모텔에서 옴짝달싹 못 하게 된 그들은 낯선 서로를 경계하며,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한 명씩 차례대로 죽임을 당한다. 한 사람씩 죽어 나갈 때마다 남은 자들의 불안과 공포는 극도로 치닫고, 빗방울은 더욱더 거세게 몰아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죽은 사람들의 사체가 없다. 분명 조금 전에 죽은 사람의 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 기이하고도 잔혹한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은 과연 누구일까? 2003년 개봉한 이래, 지금까지도 최고의 반전 스릴러물 중 하나로 손꼽히는 영화, '아이덴티티'의 내용이다. 흔히, 정신분열증 혹은 다중인격으로도 불리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를 다룬 이 영화는 자아 정체성과 범죄라는 흥미로운 두 소재의 만남을 통해 관객들에게 신선하고도 짜릿한 스릴감을 맛보게 했다. 80년대 처음 학계에 보고된 이후, 비로소 최근에 연구되기 시작한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증세가 보이는 특수성 때문에 범죄 수사물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인기 소재거리가 되었다. 우리는 인격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들, 결국 잔인한 살인마가 되어버린 그들을 수도 없이 만나왔다. 아이덴티티의 말콤은 물론, 지킬 앤드 하이드, 히치콕이 만들어낸 싸이코 살인마 노먼까지. 이제는 지겨울 법도 한데, 여전히 그들의 존재는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구석이 있다. 왜 우린 아직도 다중인격을 가진 살인마의 이야기에 그토록 열광하는가? 하나의 육체에 복수의 인격이 존재한다는 사실, 이것이 실로 가능한 일인가?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Exhibition view of 'Double Je, artisans d'art et artistes' at Palais de Tokyo from March 24 to May 16, 2016 Photo : Aurélien Mole